• Dying to see you - 1/2
  • 2018. 11. 27. 18:05

  • "이 새끼가."


    좋게 말하자면 초연했고,


    "사람 말이"


    사실대로 말하자면 무관심했다.


    "말 같지 않냐?"


    둔탁한 마찰음이 체육 창고 안을 가득 메운다. 하나. 복부로 날아와 꽂히는 주먹 소리. 둘. 이제 곧 여름인데도, 하나. 창고 안은 서늘하다. 둘.

    규칙적인 주먹질에 심장 박동이 걸음을 함께 한다. 하나. 둘. 하나. 둘. 아침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프다. 꾸준한 구타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러고 보니 나, 매점에 가는 중이었지. 하낫 둘 하나. 이윽고 심장 소리가-


    "일어서."



    멎었다.






    Dying to see you







    아니. 멈췄다, 주먹질이. 몸을 뒤척이자 교복 버석이는 소리.

    일어서려고 몸에 힘을 줬더니 오래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근육이 당긴다. 어쩔 수 없이 일어서는 대신 상체를 벽에 기댔다. 흙바닥에 빼앗긴 체온과 벽의 서늘함에 몸이 떨렸다. 교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는 팔이 조금 떨린다.


    "허."


    주황색으로 반짝이기 시작하는 필터 끝을 바라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 아침 매점으로 통하는 복도를 걷다가 방금까지 날 패고 있던 놈과 부딪혔다. 놈은 소위 말하는 노는 무리의 머리였고, 이유 없이 내게 눈을 부라렸고, 나는 이유 있게 비켜. 라고 말했다. 그리고 놈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팼다. 엉성하지만 명확한 인과관계다.


    "끝났냐?"

    "허."


    탄식 비슷한 연이은 '허' 소리가 거슬렸다. 문을 등지고 선 채 날 내려다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학교라는 집단 내에서 어떤 종류로든 머리로 선 놈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학교에 대한 애정도는 나보다 이쪽이 더 높을 것이다. 나는 학교를 찬양하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따위의 감성적인 생각도 없었다.

    멋모르는 놈들은 나의 이런 초연한 성미를 '본받고 싶다'며 접근해 오기도 했지만, 곧 내가 모든 것을 뛰어넘은 인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나는, 배가 고프다.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다."


    퉤. 놈의 입에서 작은 욕지거리와 함께 튀어나온 점성이 높은 액체가 내 얼굴 위로 착지했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얼굴에 늘어진 침을 닦았다.


    "뭐 이런… 씹.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꺼져 새끼야."




    0교시 자습시간. 모두들 착실히 자리를 채우고 있는지 학교 전체가 한산하다. 다시 복도를 걸으며 교복 여기저기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냈다. 재질이 빳빳해서 손으로 툭툭 쳐도 제법 깨끗하게 털린다. 문득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가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질려 아무 예고 없이 나에게서 멀어진 이들의 얼굴이, 먼지처럼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부질없는 생각을 집어삼키며 조회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대로 매점으로 직행하려다가 가방이나 놓고 갈까 해서 교실로 발길을 돌렸다.


    "야. 전진."


    조회가 끝나고, 각자 떠들 자리를 찾는 움직임이 부산한 가운데 반장이 가방을 내려놓는 내 앞에 섰다. 매일 아침 벌어지는 부산한 풍경이 일순간 정지했다. 반장은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꽤 놀란 눈치다.


    "담임이 너 오자마자 교무실로 오래."

    "매점 좀 갔다가."

    "어어, 바로 오라고 했는데."


    그 말에 한쪽 손을 들어 보이며 돌아서는데, 남은 팔을 붙잡혔다. 잡힌 곳이 마침 맞은 부위라 나도 모르게 미간이 구겨졌다. 그와 동시에 잡힌 팔이 자유로워진다.


    "그럼… 그냥 매점 갔다가, 지금 왔다고 해."


    반년이 지나도록 같은 반에 누가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했지만, 반장의 얼굴만큼은 낯이 익었다. 말 잘 듣게 생긴 얼굴 때문에 강제로(엄연히 투표로 뽑히긴 했지만) 반장이 된 녀석이었다. 몇 안 되는 낯익은 얼굴이자 나에게 말을 붙여오는 더 몇 안 되는 얼굴이기도 해서,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차피 녀석도 타인이다. 이것으로 오늘 세 번째로 같은 복도를 걷는다.




    소문이란 늘 그것을 퍼트리는 사람의 소망을 반영한다.

    모세가 홍해를 반으로 가르는 광경이 이러했으리라, 싶을 만큼 명백한- 좌우로 흩어지는 인간의 파도. 날 피할 산뜻한 이유가 필요했는지 매점에 갔다 온 사이 '오늘 아침 전진이 누구누구와 붙었다.'고 얘기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진이 누구누구와 붙었다'는 실로 간단한 구성의 문장은 과장되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 이윽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두들겼다가 졸지에 나와 '붙었던 상대'가 놈은,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했지만, 놈을 제외한 녀석들은 내가 무서워서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고, 그래서 나에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전진!"


    그리고 어느 날, 똥에게 말을 걸어온 똥개 한 마리. 나를 바라보는 둥근 눈이 빛난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2층 아주머니가 키우는 강아지와 똑 닮았다. 새카만 머리카락에 눈동자에, 종종걸음. 그 종이 뭐라고 했더라, 아. 닥스훈트.


    "누구?"

    "너한테 관심 있는 사람. 아니면 뭐, 똥한테 관심 가는 똥개 정도."


    …잘 아네.


    "그리고 우리 같은 반 된 지 반년째."

    "…나 안 무섭냐?"

    "네가? 그 얼굴로? 푸하. 그리고 뭐, 얼굴로 사람 사귀냐. 그럼 전교생은 나의 포로."

    "………."

    "흐."


    닥스훈트 같은 얼굴로 웃는 녀석의 뒤로, 경악하는 아이들의 눈빛.


    너의 이름은, 김동완이라고 했다. 통 귀에 들어오지 않던 노래에서 우연히 가사를 알게 된 부분만 증폭되어 들려오는 것처럼, 일단 내 범위에 발을 들여놓은 너는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너는 나와 자의로 통성명을 한 유일한 사람이자, 동시에 학급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왜 여태 너를 몰랐을까 싶을 만큼 아이들 사이에서의 넌 독보적이었다.



    그 후 넌 곧잘 내 자리로 왔고, 아무 내용도 없는 얘기를 하다가 돌아갔다.

    기말고사 2주 전에 자리를 바꿔 앞뒤 자리가 됐고, 넌 머리를 밀었다. 뒷자리에서 보이는 네 작은 머리통이 우스웠다.

    수업 시간 중에 때때로 넌 고개를 젖혀왔고, 내 긴 머리 사이로 찔려오는 네 머리칼이 따가웠다.


    "왜 밀었어?"

    "그냥."


    넌 고개를 젖히고 난 뒤로 물러나고. 그럼 넌 날 보고 웃었다.



    -



    6시 50분, 이번 마을버스를 놓치면 지각이다. 밖으로 튀어나온 신발 끈을 안으로 집어넣고 있는데 타닥타닥, 하는 작고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앞에서 멈추었다.


    "……."


    너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2층에서 키우는 닥스훈트였다. 손을 뻗어 작고 둥근 머리통을 만지려는데,


    "이리 와, 형 방해하지 말고 엄마한테 와야지."


    주인아주머니가 다급하게 강아지를 부른다. 강아지 위에 머문 손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몇 번의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내 옆으로 따라붙던 닥스훈트는 마침내 아주머니의 손에 의해 직접 거두어졌다. 아주머니의 손 위에서 강아지는 몸을 활처럼 구부리고 낑낑 소리를 냈다.


    "학생, 학교 가는 거야?"


    끄덕. 고개를 까닥여 보이고 걸음을 빨리 했다. 아무래도 버스를 놓칠 것 같다. 철컹, 대문이 닫히자 다시 작은 발소리와 함께 가자 가자,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관심한 나의 태도 때문에 난, 아주머니와 간혹 마주치거나 대화를 해도 예, 예 하는 대답만 할 뿐이었고, 이젠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주머니와 나는 확연한 타인이었고, 물론 상관없었다. 나는 어색함이 쌓여 만들어진 어색함에도 익숙했다.



    그런 나와 달리 너는 상냥하고 살가워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너는 늘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다녔는데, 하늘색의 두툼한 모양새라 쉬이 눈에 띄어 질책을 받기 일쑤였지만


    "김동완! 너 손목에 그게 뭐냐."

    "아아아, 농구하다가 삐끗해서요. 나으면 뺄게요오. 네?"

    "녀석, 그 놈의 손목은 어째 일 년 내내 낫지를 않냐. 한 여름인데 땀 안차냐?"

    "넵!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들조차 그런 너를 귀엽게 여겼다.




    여름이 깊었다. 기말고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 종례 시간에 시험 대형으로 책상을 옮긴다고 했다. 웬일로 하루 종일 조용하던 네가, 마지막 교시 시작 전에 제법 많이 기른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을 붙여왔다.


    "무서운 얘기 좀 해줘 봐. 전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뭐?"


    눈이, 반짝인다. 가슴이, 따끔했다. 나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어. 거기에 눈, 코, 입이 거꾸로 달린 귀신이 나왔지. 그 시리즈는 책상 아래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꽂긴 했지만. 그날부터 무서워서 책상 밑에 들어갈 수 없게 됐어."

    "………."

    "…뻥인데."

    "………."

    "………."

    "으악! 똥이 개소릴 한다!"


    결국은 나도 웃어버렸다. 넌 마지막 교시가 끝나고, 종례를 하고, 자리를 옮길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 *




    그렇게 내 인생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시체를 보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그래서 인식이 바뀌고 세계가 뒤집어지고. 그런 류의 굴곡이 전혀 없던 인생이었다. 살아가는데 어떠한 이유도 없었고, 있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바라는 것도 전혀 없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알은 이미 나의 온전한 세계였다.


    네가… 그런 나의 세계를 부수고 스며들어 왔다.

    불모지 같던 삶에 내린 단비. 였으면 좋았겠지만, 넌 차라리 가뭄이었다.


    네가 의도한 바 아니었겠지만 너의 소용돌이치는 생명력 앞에, 나는 내가 죽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그것을 일깨우고 끝없이 확인시켜주었다.

    죽어간다, 식어간다, 너에게 가라앉는다….

    그러나 그렇게 가라앉을수록, 너에게 기울수록 난 더더욱 너를 몰랐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시 자리를 바꿨다. 이번에는 내가 너의 앞자리였다. 답지 않게 기분이 좋았다.


    "여어. 똥 안녕."

    "안녕."


    내게 인사를 한 너는 곧 옆자리의 아이와 잡담을 시작했다. 눈에 띄게 줄인 음성 가운데, 얼핏 내 이름을 들었다. 필시 너는 왜 전진과 어울리냐는 내용일 터였고, 넌 상관 안 했고, 그래서 난 상관있었다. 전 같으면 내가 누구에게 언급되든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그 누구는 다름 아닌 너였다.

    자리에서 끝없이 네 등짝을 바라볼 때, 그리고 네 시야에 항상 내가 걸려있다는 걸 알 때. 어떤 쪽이 더 괴로운지는 알 수 없었다. 보고 있어도 목말랐고, 네가 보는 내가 나 같지 않았다.

    네가 나를 들여다본다면, 네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너는 웃고 장난을 치다가도 돌연 차가워질 때가 있었는데, 그 차가움 역시 너의 일부였다.

    넌 모두에게 받아들여졌지만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에게 깊이 관여했지만 ㅡ주로 그 '모두'가 널 자신들에게 '관여'하도록 만들었다ㅡ 너는 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는 보였다. 너의 세계가. 나는 너를 몰랐지만, 알 수 있었다. 너와 난 동류였으니까.

    …너도 내 세계를 봤을까.



    "제군들,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문화 시간, 평소 학생들과 거리낌 없기로 소문난 사회문화 선생이 물었다. 사회 문제의 발생 원인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반 전체가 소란스럽게 일어났다. 사랑이 전부라느니 사회적으로는 용납되지 않는다느니 신을 거역하는 일이라느니, 차별적 교제 이론, 개인적 일탈 등 이런 저런 얘기가 튀어나오는 가운데


    "개같은 짓이죠."


    네가 말했고, 모두는 침묵했다.

    시끄럽던 곳에 한순간 정적이 감돌면 귀신이 지나간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넌 귀신이었다. 넌 우리 반 전체에게 웃음을 던졌다가, 정적 역시 끌어오곤 했다.


    "…워낙 이 자식들이 절 좋아하는 바람에. 지나친 애정은 사절입니다, 제군들."


    네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고, 선생 역시 안심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넌 귀신같이 왔다가 슬며시 지나가, 다시 온기를 줄 줄도 알았다. 너의 실없는 웃음이나 농담으로 회복될 것 같지 않았던 빙하기는 해동되고, 다시 들끓고, 굳고, 또 다시금 녹았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늘 웃는 낯에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넌 사막의 낮과 밤이고, 모래였다.

    물기가 없는 것은 물론 닿으면 나마저도 바스라질만치 건조했다.

    너를 향한 감정은 물처럼 넘쳐흐르고, 또 너로 인해 여지없이 흡수당했다.



    -



    "김동완."


    네가 없는 곳에서 소리 내어 네 이름을 불러본다. 아무도 없는 집 안은 음소거를 한 듯 먹먹하다. 침묵에 귀가 먹는다. 사사삭 풀숲 헤치는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날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널 부른 게 아니야."


    뒤이어서 경쾌한 박자가 들려온다. 닥스훈트다. 너를 닮은 닥스훈트- 닥스훈트를 닮은 네가 내 가슴 한가운데 앉아 있다. 가끔 제 뒷목을 긁는다는 게 내 마음을 갉작인다. 흠집이 났다. 탁탁탁탁 검은 덩어리가 뛰는 소리, 쿠션 같은 발바닥이 바닥과 마주 닿는 소리, 가슴을 간지르는 그 소리. 창문을 열자 이쪽으로 다가온다.


    "안녕. 동완아."


    새카만 눈동자.


    "내일이 방학식이야. 앞으로 더 자주 보겠네."


    나는 창틀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닥스훈트를 쓰다듬었다. 문지르면, 엉덩이를 중력에 맡기는 닥스훈트. 손을 떼고 방충망을 끌어오면, 우는 소리를 내는 닥스훈트. 그게 못내 가슴 아픈 닥스훈트. 작은 머리통의 닥스훈트. 정 붙이기 무서운 닥스훈트. 한참이나 사라졌다 나타나는 닥스훈트. 늘 내가 먼저 널 발견하는… 너.

    알람 소리보다 날 더 깨우는 네 발소리.


    늘 학교가 지겨웠고,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바닥에 누워 학교에 갈 새벽을 기다렸다. 우습게도 그랬다. 학교에 간다는 것이 설레었다. 죽은 심장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었지만, 버스를 타고 졸며 가면, 네가 있다.




    일찍 도착하여 교실 문을 열었지만 너는 없었다. 네 책상에는 가방도 걸려 있지 않았다. 가방을 던지듯 놓고 목이 텁텁해져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더 갑갑해질 거란 걸 알았지만, 그래서 담배를 물었다.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었으나 햇빛이 너무 강했다. 내게 너는 학교라는 것의 전부를 차지했지만, 네게 나는… 너무 작았다. 끝없이 부딪혔지만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서늘함을 찾아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댔다. 낯선 종류의 오싹함에 흥미가 동했다. 아주 조금씩 고개를 아래로, 아래로 떨어뜨리는데… 누군가 나를 확 낚아챘다. 그 바람에 크게 휘청인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어 그 누군가를 보았다. 너였다.


    "…뭐야? 떨어질 뻔했잖아."

    "네가 또,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뭐? …또라니?"

    "죽으려면 혼자 조용히. 오케이? 나 먼저 간다."

    "………."


    더 이상 목을 답답하게 만들지 못하는 담배를 기꺼운 마음으로 비벼 껐다. 너의 발걸음을 쫓아 교실로 내려갔지만 너는 없었다. 대신 너의 행적을 증명하듯 네 책상 위에 아까는 없던 가방과 MP3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뭔가 하는 척하다가, 조용히 몸을 돌려 네 MP3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룹별로 나뉘어 있는 곡명을 훑어보다가 VOICE 폴더에 녹음되어 있는 것들을 발견했다. REC파일… 재생시키자, 네 목소리다.

    직접 듣는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버스 안인 듯 규칙적인 덜컹거리는 소리와 너의 허밍이 작게 흘러 내 가슴속으로 고여 들었다.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네가 다가오고 있었다. 황급히 전원을 끄고 몸을 앞으로 향했다.


    넌 인사 없이 자리에 앉더니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그 뒤로 소리 없이 잠잠했다.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네가 내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전진."

    "응?"


    하며 돌아보자, 그제야 안녕- 말하고 작게 웃는다. 너는 늘 성을 붙여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네 이름을 불러본 적조차 없었지만, 그게 썩 아쉬웠다. 네가 정말 닥스훈트라면, 네 이름 정도는 부를 수 있을 텐데.

    내일이면 여름방학이었고, 너는 방학 중 특기 적성 수업을 신청했다. 너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담임은 너를 아끼는 마음에 대학에 갈 생각이 있다면 특적을 들으라고 했고, 나는 그런 너를 따라 처음으로 특적을 신청했다. 세 과목이 같은 반이었다. 담임은 내가 특적을 신청한 것을 의아해하는 듯했지만, 물론 말리지는 않았다.

    네 책상 위로는 영어 교과서가 펼쳐져 있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어떤 문장을 짚으며 묻는다.


    "I have been dying to see you… 가 무슨 뜻이냐? 널 보려고 죽는다?"


    어제 한 거잖아.


    "…보고 싶어 죽겠다."

    "아하. 뭐. 거의 다 맞혔네. 고맙다."


    네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도 몸을 틀었다. 0교시 자습시간이 끝나고 나서 간단히 방학식을 했다. 약간은 울적한 마음으로 너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네가 대뜸 물었다.


    "우리 집에 갈래?"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버스를 탔다. 자리가 없어 맨 뒷좌석의 창가 쪽에 네가, 그 옆에 내가 앉았다. 나는 왜 너의 집에 가자고 했는지 묻지 않았고, 너도 아무 말이 없었다.

    너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나는 네 MP3에서 흘러나오던 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네 목소리와 함께 흐르던 것과 비슷한 버스의 진동에, 돌연 옆에 있는 네가 그리워졌다. 살짝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졸린 듯 눈을 몇 번 끔벅이더니 내 어깨에 고개를 떨궜다.

    숨을 쉬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네가 깰 것 같았다, 조심조심 숨을 쉬었다. 너는 내게 숨을 주고, 나의 숨을 앗아갔다.



    너의 집은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조금 걸어야 했다. 더운 날씨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지만 넌 손목의 보호대를 빼지 않았다.

    너와 함께 너의 집 현관문 앞에 나란히 서 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너는 MP3를 끄고 가방 옆 주머니에 넣더니 역시 거기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이쪽저쪽 살펴보며 신발을 벗는데 검은 강아지가 빠른 속도로 바짓단을 파고들었다.

    그 바람에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는데 내 발에 밟혔는지 깨갱, 하는 울음소리가 났다. 네가 하하하 웃었다. 너를 향해 부러질 듯 흔드는 강아지의 꼬리가 앙상했다.


    "이거, 무슨 종이야?

    "닥스훈트."

    "어. 내가 알고 있던 거랑 다르네."

    "아아. 털이 긴 게 있고, 짧은 게 있거든."


    그건 그렇고. 많이 닮았다. 어쩐지, 네가 강아지 같더라니.


    "얘는 단모종이야. 털이 짧아서 늘 춥대. 그래서 사람 체온을 그리워하고. 나보다 걔가, 감정 표현에 더 능하지. 하하."


    나도 외롭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말하는 문장과 들리는 문장이 다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나에게 쇼파에 앉아 있으라고 한 뒤 씻으러 들어갔다. 작게 물소리가 났다. 욕실에서 나와 젖은 머리를 탁탁 터는 네 손목에는 보호대가 없었다.


    "너 혼자 사는 거야?"

    "아니. …아는 형하고."


    네 표정이 어두웠지만, 네 어둠을 언급할 만큼 난 밝지 못했다.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 너와 나 사이를 전전하는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등짝에, 일렬로 털이 없는 부분이 있다. 취미 독특한 외계인이 그려놓는다는 미스터리 서클처럼.


    "아 그거? 내가 그은 거야. 칼 맞으면 털 안 자라잖아."


    내 눈길을 좇던 네가 말했다.


    "………."


    어. 믿네. 하하. 책 읽듯 그런다.


    "털갈이하는 거야. 잘 보면 완전히 빠진 것도 아니고."

    "그럼…"


    그럼 네 손목에 그건?

    네 손목의 벌겋게 부푼 자국이, 눈이 부시게 박혀왔다. 가슴이 파열된다. 네가 눈을 똑바로 맞춰왔다.


    "아. 그것도 내가. 아니."


    끝에 따라붙는 아니가, 무엇보다 내겐 중요했다. 안도하여 뭐 마실 거 좀 있어? 물으려는데,


    "강아지는 내가 안 했으니까 이건 내가."

    "………."

    "너만 아는 거야. 우리 강아지랑."


    뭐 좀 마실래?

    아니.




    너무 덥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일찍 집에 왔다. 그날 밤 나는 네가 손목을 열고 마실래? 하고 묻는 꿈을 꿨다. 다음 날 특적이 시작되었고, 너는 학교를 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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