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ying to see you - 2/2
  • 2018. 12. 9. 05:04

  • 그 다음 날에도 너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현관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강아지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풀리지도 않은 운동화 끈을 매만지면서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헥헥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다가오질 않아 고개를 들었더니, 그동안 훈련이라도 된 것인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얜 이름이 뭐에요? 이리 와봐."


    아주머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곧 따뜻한 기운이 얼굴에 퍼졌다. 형한테 가 봐. 강아지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이 부드럽다.

    새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올 때는 알 바깥에 있는 어미도 부리로 껍질을 쪼아 새끼가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인간의 어미는 아이를 낳을 때 크나큰 고통을 겪지만, 아이 역시 어미를 해치지 않게 손톱을 주먹 안으로 감추고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기 위해 두개골을 좁힌다.

    나의 세계를 깨도록 돕는 부리는… 너의 것.


    다음 세계로 나아가려면, 그에 상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껍질 밖의 세계는, 손만 뻗으면 매만질 수 있다. 

    하나의 세계에 안주하는 것은 완전을 찾은 것이 아니라 불완전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금, 다른 세계가 나에게 닿았다.



    아주머니의 강아지는 털이 길었지만, 너의 닥스훈트처럼 꼬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넌 모두를 갖고서도, 머리를 밀었다.


    [단모종이야. 털이 짧아서 늘 춥대. 그래서 사람 체온을 그리워하고.]


    "……."




    일주일이 지나, 1교시가 끝나고서 네가 왔다. 넌 하늘색 보호대를 차는 대신에 긴팔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긴팔은 또 뭐냐? 금세 모여들어 묻는 아이들에게 "감기였어. 그리고 이건 추워서. 내가 원래 약골이잖아." 대답하며 쓰러지는 시늉을 한다. 아이들은 우르르- 웃으며 너의 머리를 헤집고 그동안 못했던 농담들을 쏟아내었다.

    아우- 됐다, 됐어. 손사래를 쳐 보이며 무리에서 빠져나온 네가, 내 쪽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옆자리는 처음이네. 감기 걸려서 이렇게 됐다."


    응.

    하고 대답하는 나의 귓가에 너는 작게 말했다.


    "뻥이고… 털갈이."





    우리는 점심시간 이후의 수업을 빠졌다. 아무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처음 보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너는 버스가 한 대 와 설 때마다 한 문장씩 말을 했고, 버스가 출발하면 입을 다물었다.


    "나 집 나왔어."

    "응."

    "…왜 나왔는지 안 궁금해?"

    "궁금해."

    "…근데 왜 안 물어봐?"

    "그냥."


    너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삐죽삐죽한 뒷머리 아래로 보이는 마른 목이 안쓰러웠다. 유난히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의 시간이 길었다. 너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을 감았다. 그 모양새가 꼭 TV에서 자주 봤던 갓 태어난 새끼 새 같았다. 여름인데도 긴팔을 입은 채 웅크리고 있는 게 자궁 속의 태아 같기도 했다. 눈을 감은 게 아니라 아직 뜨이지 않은 것처럼, 다른 세계로 나가기 직전의 생명처럼 그렇게 넌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내가 도와줄게. 네가 부리를 빌려줬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응?"


    감은 눈을 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에 말문이 막혔다.


    "아니야. 아무것도."

    "…뭐야, 싱겁게."



    그렇게 말하며, 멀건 죽같이 싱겁게 너는 웃었다. 느지막이 도착한 버스가 서서히 멈춰 섰다. 이름 모를 사람들을 토해내고 다시 삼키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너는 버스가 왔는데도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때."


    그렇게 괴로운 표정으로, 슬퍼 죽겠는 표정으로. 나보다 걔가, 감정 표현에 더 능하지. 하하. 다른 말로 외롭다고 말하던 그때처럼, 나 좀 멈춰달라는 얼굴이야. 지금 너.


    "너 우리 집에 왔을 때. 그 같이 산다는 형…"

    "…천천히 해도 돼. …동완아."

    "응?"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응. 응, 진아."




    나는 싫다는 너를 끌고 삼계탕 집으로 들어가 삼계탕만 두 그릇을 시켰다. 왜 네 마음대로 시키냐던 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맛있게 밥을 먹었다. 말없이 닭다리를 뜯는데 전념하던 네가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너 나 보고 있었지."


    말끝도 올라가지 않는 평서형이다. 아내가 결혼 초기에는 남편에게 반찬 맛있어? 라고 묻고 몇 년이 지나면 맛있지? 라고 묻는다는 얘기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으음?"

    "쭉. 보고 있었잖아. 모를 줄 알았냐?"


    응, 그랬다. 처음 날 부른 건 너였지만 그런 널 못 잊어 한 건 나였다. 나는 나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는 너를 알아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냐? 옥상에서."

    "옥상? 방학식 날에?"

    "아니야. 그것보다 먼저야. 학년 초에, 처음으로 손목을 그은 다음 날… 옥상에 올라갔다가 너를 봤어. 그리고 알 수 있었지. 너랑 난 같은 종류라는 걸."

    "………."

    "사라져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건드릴 수가 없었는데… 방학식 때는 그것보다 먼저, 겁이 나서."

    "………."

    "……정말, 너랑 강아지만 알아. 이거."


    너는 그렇게 말하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려고 했다. 나는 손을 뻗어 단추를 끄르는 네 손을 저지했다. 손에 와 닿는 교복의 감촉이 까칠했다. 체육 창고에서 묻었던 흙은 정말 손쉽게 떨어졌는데, 다들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이었던 듯 먼지처럼 흩어졌는데. 너는 도무지 떨쳐 내지지가 않는다.


    자꾸 허기가 졌다. 잔뜩 맞고 나서 매점으로 향했던 그때와는 다른 종류의 허기가 진다.


    "…배고프다."

    "야야. 지금 먹고 있잖아. 생각보다 통 크다, 너?"

    "김동완."

    "응?"


    김동완.


    "밥 많이 먹고 키 좀 커라."

    "그래 너 키 커서 좋겠다, 자식."

    "밥 많이 많이 먹고, 잠도 잘 자고."

    "그래."

    "그럼 키도 더 클 거고, 잊혀질 거고, …상처도 나을 거고."

    "…그래."



    밥을 다 먹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우리는 학교로 돌아왔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가방을 맨 채 돌아다니는 우리를 몇몇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지나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와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너는 난간에 기대 MP3를 꺼내더니, 들을 생각은 않고 손에 들고만 서 있었다. 내가 뭐해? 하고 묻자 뭔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네가 말했다.


    "근데 전진. 그, MP3라는 거에는 말이야."

    "응."

    "어떤 노래를 듣다가 전원을 끄면, 다음에 킬 때 그 부분서부터 재생이 되는 기능이 있거든?"

    "………."


    아. 그때. 

    난처한 듯 굳어지는 내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어…. 뭐라고 말해야 되지. 그러니까… 내가 먼저였어. 네 세계를 주시하기 시작했던 거."

    "………."

    "이거 부끄럽구만. 허허. 옥상에서 너를 처음보고서부터야. 너라면 나를 알아차릴 것 같아서 다가갈 수가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네가 어딘가에서 얻어터져 왔더라고. 생각보다, 무른 녀석이더라고. 그래서, 손을 뻗었지. 그리고… 음…."

    "………."

    "…나도야."

    "…뭐가?"


    그저 웃는다. 네 웃음에 잊고 있던 심장이 뛰었다.

    어디선가 뿌리 모를 바람이 불어왔다. 태양은 방학 전보다 많이 약해져 있었다. 너와 나의 비율이, 천천히 서로에게 흘러들었다. 너의 속에 있는 나란 사람의 크기가 느껴졌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이거, 들어봐. 지금은 어디쯤이지?"

    "응?"


    너는 아무 설명 없이 팔을 천천히 뻗어, 내 가슴을 툭- 하고 쳤다. 그 바람에 맺히지도 않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전원이 켜져 있는 너의 MP3를 받아 들었다. 체육 창고에서 담배를 물었던 때처럼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PLAY]


    ---아. 여기는 김동완. 김동완입니다. 들립니까? 음… I have…


    치직치직하는 잡음 사이로, 너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줍은 영어발음과 어색해하는 너 때문에 난 웃었다.


    ---I have been… dying to see you. too.


    소리가 멎었다.


    "…투?"


    씨익.


    "네가 그때 그랬잖아. 보고 싶어 죽겠다고."

    "………."

    "나 원래 알고 있었어. 그 뜻."

    "………."


    너는 내 귀에 끼워져 있는 이어폰을 한쪽씩 거두어내고, MP3를 가져가더니 조작 버튼을 서너 번 움직였다. 그러고서 이제 많이 자란 머리칼로, 그러나 여전한 눈으로. 다시 내게 내민다.


    "아니 잠깐만, 근데 아까 그 부리라는 거. 뭐냐?"

    "나중에 가르쳐줄게."

    "나중에?


    응, 나중에. 네가 알을 깨고 나오면 그때.




    액정을 들여다보자 보이스 레코더가 작동되고 있었다. 00:01, 00:02. 너와 나 사이로 시간이 쌓여간다.

    지나간 네가 죽고, 다가올 내가 산다. 너로 인해 내 죽은 심장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너로 인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RECORD]


    너는 나를 죽이고, 치유하고, 구원한다.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미 투."





    Dying to see you

    working period : 060915 - 060917

    fin.





    -


    처음에는 다른 멤버로 썼다가 다시 진으로 돌아왔다.

    결국 둘은 새끼 새와 모세를 나눠가졌다.

    다시 읽어보니 이때는 오빠얌이 삼계탕을 싫어하는(?) 줄 차마 모르고 이렇게 썼었네... 아련...

    녹음기 소재는 아다치 미츠루의 <러프>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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