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rmaid In Wonderland - 2/2
  • 2018. 11. 9. 17:18

  • 여름이다- 북극이라고 최면을 걸어도 확신할 수 있을만큼, 확연한 여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에어컨? 사치라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 기승을 부렸던 열대야에 처음으로, 에어컨의 존재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올해- 한강에 나가서 인터뷰 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위안은 6월 중순인 다음주면 방학이 시작된다는 사실로, 대학에 들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기말 고사만 끝나준다면.


    빽빽한 전공서를 제쳐두고 고개를 돌렸다. 거실 창으로 보이는 여름이 더웠다. 이글이글, 6월임에도 따가운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떨어진다. 비라도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저 커다란 창 가까이 누워 내리는 비를 보고있으면, 곧 빗 속에 누워있는 기분이 된다.


    "진아, 자?"

    "아니이."


    몇시간 째 테이블에 앉아 공부를 하던 형이었다. 내가 들어오던 날 '집에 있을 때는 대부분 거실에 있는다'고 했던 말 그대로, 형은 정말이지 늘 거실에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일본어 공부를 하거나 전공관련 서적을 읽고, 밥을 먹거나, TV를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낮잠을 잤다.

    계절은 여름, 에어컨은 거실에만 있고 내 방은 덥다. 그리고, 김동완이 거실에 있다. 그래서, 나도 거실에 있는다.


    "뭣 좀 먹고 계속하자. 너도 아침부터 계속 그러고 있었잖아."


    전공이 너무 차이가 나 별 도움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시험날을 같이하는 동지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힘이 됐다. 내가 재수를 하지 않고 제 때 들어왔다면 올해로 2학년일테고, 한살 위인 동완 형은 3학년이다. 해양생물학과를 졸업, 아쿠아리움에 취직해서 아쿠아리스트가 되던가, 정 안되면 양식을 하겠단다. 더불어 너도 할 거 없으면 같이 하자는 말도.

    취직될 확률은, 바늘 구멍으로 거대오징어가 지나갈 만큼이야. 일단 아쿠아리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니까.

    하지만 형은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보다 해양관련 사업이 훨씬 탄탄하다는 일본에 가지 않겠다는 이유는 몰라도, 형이니까. 안 그러면 나까지 외울만큼 열심인 일본어가 아깝다. 종일 형을 받치고 있는- 나사가 빠져 삐걱이는 컴퓨터 의자도.


    질보다 양의 정신으로 밥을 먹고나자 한층 더 나른해져서 쇼파에 누워버렸다. 식사와 청소는 일주일 씩 번갈아가면서 맡는데 이번주는 형의 차례였다. 형은 착실하게 반찬통을 챙겨 넣고 설거지를 하다가,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고무장갑을 낀 채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방문까지 잠궈놓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다. 마지못해 일어나서 설거지를 끝마쳐갈 때 쯤에야 방문이 열렸다.


    "무슨 전화길래 장갑도 안 벗고… 헉."


    형이다. 형이긴 한데, 노란 후드티와는 지나치게 거리가 먼, 형답지 않은 형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 반면 얼굴에서는 번쩍번쩍 광이난다. 웃다가 턱 빠지겠다.

    아니 근데 이 여름날 무슨 정장이야? 어디 상 났어? 그럼 저 미소는 뭐야?


    "형. 무슨 정장을 다. 어디 미팅가?"

    "비슷해. 면접 보러 간다, 나."

    "뭐, 면접? 혹시."

    "응, 그 혹시."

    "………."

    "………."

    "으악! 아쿠아리움이야? 채용공고 난거야?"

    "아하하하. 그쪽에 연줄이 있거든."

    "어쩐지! 일본 어쩌구 할 때 알아봤지!"


    아하하하. 소리내서 웃는 형 대신 이번에는 내가 말없이 웃었다. 저렇게 들뜬 형은 처음봤다. 뭔가 가슴 가득 뿌듯한게,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날개짓을 가르치려고 둥지밖으로 내치는… 어쨌든, 그런 심정이었다.


    "아니 근데, 형은 무슨 수족관 면접가는데 정장을 다 빼입냐."

    "그래도 첫 인사잖아."

    "정장위에 쫄쫄이 입을래?"

    "왜, 그럼 다 벗고 갈까?"

    "………."


    …아니 이런 조숙한 아기새 같으니. 아기새 취소다.


    "야, 야. 왜 얼굴은 붉히고 그래."

    "…형은 가끔 순진한 얼굴로. 쯧."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됐어. 빨리 가 봐, 이러다 늦겠다."

    "…야 전진."

    "아아아아. 청년 실업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시대에, 대학 다니면서 벌써 직장 얻을 거 생각하니깐 부러워서 그래. 어여 갔다와. 훠이훠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과민반응 때문에, 되는대로 둘러대버렸다. 그래도 형은 녀석- 양식 못하게 되서 서운했구나. 붙으면 가장 먼저 널 구제해주마, 하며 집을 나섰다. 나는 현관문이 잘라낸 동완 형의 그림자에게 대신 사과했다.




    형이 없는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며 책을 붙들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내용이 들어오질 않았다. 그렇게 형을 보낸 것이 마지못해 미안했다. 공부도 안되고 미안함에도 끝이 없어서, 결국 내일 있을 시험을 포기하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그리고 형에 대한 내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럼 다 벗고 갈까? 누가 봐도 명백한 농담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누군가가 걸어올 시덥잖은 농담. 아, 전진, 얼굴까지 빨개지는 건 뭐냐.

    김동완이라는 이름이 내게 던지는 것이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알았다. 나는 김동완이 좋다. 는 문장이 머릿속에 완벽히 떠오른 것도 한참 전의 일이다. 그러나 자고로 좋아하는데는 이유가 없고, 좋으니까 좋다는 식이었지 이렇게 곰곰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한마디로 고민없이- 전진 곧장 straight로, 보여줄게 내 100프로.


    그렇게 해묵은 일들을 헤집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동안 저녁 먹을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형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여태껏 한번도 누른 적 없으면서. 먼저 화해를 걸어오는 ㅡ싸운 적도 없고 있다 해도 사과해야할 건 나였지만ㅡ 형의 행동에 후루룩 풀어지기에 오늘 난 너무 무거워서, 인터폰을 들지 않고 버튼만 꾹 누르고, 후다닥 거실로 돌아와 책을 보는 척 했다.


    "………."


    문이 열렸는데도 들어올 기색 없이 잠잠하다. 괜히 걱정이 되서 몸을 일으키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어정쩡한 자세로 무관심한 척 늦었네? 해도 대꾸가 없다.


    "뭐… 면접은 어떻게 됐어?"


    무표정. 아, 여기가 북극이구나.

    후회막급. 애교부리기엔 이미 늦었다. 초인종 눌러줬을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진아."

    "으응?"


    우울한 것 치곤 미묘한 억양이다. 영문을 몰라하는 내 앞에, 형이 문 밖으로 감춰뒀던 뭔가를 불쑥 내민다. 손끝에서 달랑거리는 저건……  케이크다.


    "술도 사왔어."


    …무슨 케이크에 맥주야. 푸하하.


    "붙었구나!"




    "그래, 무슨 일 하는거야?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그래?"

    "아니이. 뭐 말하자면 인턴같은 거. 수조 청소하고 먹이 손질 거드는, 잡역 비슷하게 고용된거야. 조금씩 조금씩 배워야지."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형의 말끝이 늘어진다. 본격적으로 함께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라서 형도 나도 다소 들떠있었다. 어색했던 일은 꿈같이 흩어지고 나는 또 그저 형이 좋았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웃고, 케이크를 먹고, 말없이 술을 마셨다.

    밤이 깊었다. 창 밖으로 밤이 자욱했다. 구름없이 뻥 뚫린 것 같은 하늘은, 그저 까맣지 않고 여러가지 빛깔들로 채색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물기 있는 형의 눈에 가슴이 왈랑왈랑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동시에 뭐든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이 가벼운, 이상한 기분이 되어서, 그래서…


    "형. 나 형이…"

    "…너. 내가 좋으냐?"

    "………."

    "나 좋아하지마라."

    "………."

    "나 나쁜애야."

    "…형."


    이럴때만 형이지. 푸시식.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는다.


    "나. 못된애야."


    내 마음은 고백하기도 전에 거부당했고, 밤은 길었다. 밤은 길었지만 공부는 한자도 되지 않았고, 다음 날 일어나자 형은 나가고 없었다. 나는 결국 시험을 망쳤다.


    * * * * *


    시간은 내가 실의에 빠져있든 말든 잘 흘러갔다. 그 날- 밤하늘에 취했던 날 이후로도 우린 잘 지내고 있다. 전과 다름 없이.

    나는 형과 온전히 함께 지낼 방학을 기대했지만 형은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아쿠아리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직접 물고기를 만지거나 돌보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모양이었다.


    그래, 우린 다름 없었지만, 그 다름없음이 전적으로 형 덕분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평소처럼 행동하기에도 버거워서, 형의 부재를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진아! 나 오늘 잠수하게 됐어! 방학끝나면 한동안 못 본다고 특별히 허락해주신거야."  


    그래도 좋은 건 어쩔수 없다는게, 더 문제.


    "…보러 가도 돼?"

    "물론이지."




    아쿠아리움이라. 어렸을 때 와보고는 처음이다. 퇴근할 때 같이 들어가려고 느즈막이 입장했더니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새로 들여왔다는 심해어도 보고, 해마도 봤다. 노란색 해마였다. '아. 물론이죠. 해마라고 해요.' 노란 후드티를 입고 있던 걸어다니는 해마.


    탕탕.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얇은 유리막 너머로 누군가가 인사를 해온다. 보이는 건 눈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쪽에서는 여성 아쿠아리스트가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와아- 인어형아다- 하면서 모여들었고, 형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수경을 썼는데도, 물이 찬 것 처럼 보인다. 물기있는 눈 때문에. 저 눈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나는 고백을 했었지. 시작도 못하고 끝나긴 했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형이 유리에 무언가를 쓰고있다. 다시 다시, 입모양을 크게 하자 한번에 알아듣고 처음부터 쓴다. 입구에서 기다려.


    "끝난거야?"

    "응."

    "근데 왜 꼭 이런 건 남녀 한쌍이지. 수중 분만 할 것도 아니고."

    "푸하. 칙칙하게 이런데까지 와서 왠 질투."


    기침하는 것처럼 끊어웃고는 그런다.


    "…인어는 공주잖아."

    "뭐라고?"

    "인어하면 인어공주지. 인어왕자라고 들어봤어? 인어공주가 메인이야."

    "뭐야. 여자 아쿠아리스트보다 인기 없어서 삐졌어? 답잖게. 아까 보니까 애들이 좋아해주더만."


    기침, 아니 웃음, 그리고 딴청.


    "관심의 대상. 이목의 집중. 기타가 등등. 나는 꼽사리."

    "마지막은 운율 맞춘거?"

    "지랄. 그 전이겠지. 제발 따라와."


    헉. 지랄이란다. 그래도 좋다. 먼저 좋아하는 쪽이 죄인이라는 소리가 이래서 나오는 거지.


    "…인어공주가. 부러워?"

    "응?"

    "형은 내 공주잖아."

    "…지랄."


    …진짠데.


    제법 아쿠아리스트 태가 나던데? 흠 역시 양식을 하기엔 아까운 인재지. 웩. 웩?!

    아 우리 사이에 흐르는 이 봄 같은 기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비참할 정도로 어색했는데, 해마 덕분인지 급속도로 양호해졌다. 여태껏 못 웃은 걸 몰아서 하는 것 처럼, 이것 저것 말도 안되는 것까지 끄집어내서 웃어제끼고 있는데 누군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집에 가는 손님이겠거니 했는데, 등 뒤에서 발소리가 잦아들더니, 동완 형을 부른다.


    "동완이 퇴근하는구나."


    …이 목소리는.

    "민우형!"

    "어,이게 누구야! 나의 싸랑하는 후배, 전진아냐!"

    "이야아아! 이게 누구야! 나를 춤의 세계로 이끈 이민우 아니야!"


    그건 다름 아닌 나의 구원자이자 큐피트- 내게 동완형을 소개시켜준 민우형이었다.


     


    "진짜 오랜만이야 형!"

    "그래, 자식이, 동완이 잠수하는 거 보러 왔구만."

    "연줄이란게 형이었구나. 형, 왜 민우 형하고 같은 데 다니는 거 말안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와보는건데. 그건 그렇고, 진짜 의외네. 형은 춤으로 뭐가 되도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됐다. 원래 인생이 그런거지."


    오랜만에 봤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원래 인생이 그런거지- 하며 웃는데, 역시, 동완형과 비슷한 웃음. 문득 '대체 동완형이랑은 무슨 사이야?' 라는 질문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만두었다. 까만 차가 우리 옆으로 미끄러져 섰고, 그걸 본 동완형의 얼굴에 눈에 띄게 굳어졌기 때문에. 다시 냉각되는 공기. 선탠한 창문이 내려가자 흰 얼굴의 여자가 안녕하세요, 동완씨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온다.


    "아, 진아. 인사해라. 아까 봤지? 여성 아쿠아리스트. 우리 아쿠아리움의 보배."

    "아아. 그러고보니 아까." 

    "올해 결혼식 올리기로 했다. 청첩장 보내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 올거지?"

    "물론이지! 안녕하세요, 형수님! 전진입니다."

    "네에, 안녕하세요."


    그 때 동완형 만나던 날 일 생겼다는 게 이거였구나? 그래, 짜샤.


    "아쉬운데 오늘도 먼저 가봐야겠다. 혼수품 고르러 가기로 했거든. 동완아, 내일보자. 진아 전화하고-"


    민우 형이 탄 차가 아쿠아리움을 빠져나갈때까지, 동완 형은 말이 없었다. 아무런 말도 설명도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왜 동완 형의 말투가, 분위기가, 웃는 얼굴이, 선배를 닮아있는지.


    [나 좋아하지마라.]


    …이래서 인어공주 운운했구만.




    …형.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되고서부터, 줄곧 좋아했어. 민우가 해양생물학과에 지원한다고 해서… 그래서 관심이 갔지. 결국 대학은 달랐지만 같은 과를 들어갔고. 처음은 그랬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 직업을, 정말로 좋아하게 됐으니까. …감사하고 있어.

    그래서 일본도 안간거였구나.

    …으응.


    형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껏 숨겨서 미안하다는 것, 처음 민우 형을 만났던 날에 대한 것, 해양생물학과에 대한 것, 면접에 붙고 얼마나 기뻤었는지, 그리고…


    그래서 내가 형을…

    ……미안.


    그래서 내가 자신과 같음을 알 수 있었다는 것도.

    이 집에 들어온 첫 날 동완 형과 민우 형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을 설친것처럼, 똑같은 이유로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햇빛에 잠이 깼다. 이렇게 예민해져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자고 일어나자 동완 형의 이야기는 마치 전날 읽은 소설처럼 담담하게 다가왔고, 나는 거실에 나가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었다. 동완 형이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거실로 나갔다.


    "………."

    "………."

    "……처음부터."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형이 독백하듯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난 인어도 뭣도 아니고… 모래 사장이었을지도 몰라. 그냥 존재하는, 왕자의 발 디딜 곳. 인어공주를 부러워할 수도 없는…."

    "…공주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응?"

    "생각해봐. 달팽이나… 뭐 걔네들 무성이잖아."

    "자웅동체."


    그래 그래. 누가 해양생물학도 아니랄까봐.


    "…어쨌든. 인어 공주라는 건 아무래도 공주보단 인어에 가깝겠지. 라볶이에서 손 더 가는데 라면인것처럼."

    "낄낄. 뭐가 그래."


    웃는 얼굴에, 가슴이 뜨끔했다.

    형, 생각해 봤는데, 나는 형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두 손으로 형의 귀를 가리자, 형은 잠시 몸을 움츠렸지만 쳐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놓고, 처음으로 형이 아닌 너를 불렀다.


    "…넌 전부터 꼭 그런 웃는 얼굴로."

    "………."

    "사람을 흔들어 놔."

    "………."


    형의 귀를 막았던 손을 천천히 내릴때까지, 그리고 내리고 나서도 형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가."

    "…어?"

    "말도 안해보고 끝낼거야?"


    다 안다는 것처럼 웃는다. 이미 다 들었다는 듯.

    늘 따뜻했던 네모진 웃음이, 뾰족하게 내 가슴을 찌른다. 진공같은 웃음에 내 심장은 중력을 잃고 떠돌아, 가없이 슬퍼져버렸다.

    첫번째 고백은 하기도 전에 편집당했고, 두번째 고백은 귀를 막고 했다.

    …아냐, 전진. 충분히 멋졌어. 사나이야 넌.


    "가야지. 형 달팽이한테."

    "…응. 갔다 올게."

    "오긴 또 어딜. 가라 가. 훠이훠이."


    형은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 느릿느릿한 배려에 더 가슴이 아팠다.

    탁. 하고 문 닫히는 소리.

    툭. 하고 눈물 떨어지는 소리.

    내 사랑이 끝나는 소리.


    ………아 씨발. 지랄. 왠 눈물.



    [벌컥]


    한참 감정에 취해있는데, 정말 벌컥하고 문이 열렸다. 난 또 내 간 떨어지는 소린 줄 알았지.

    나는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볼까봐, 마루에 떨어진 눈물을 맨발로 슥 닦아내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응? 뭐 놓고 갔어?

    "바보."

    "…다짜고짜 바보라니."

    "…다 보여."

    "뭐…?'

    "다 들린다고. 귀를 가렸으면… 마저 눈까지 가리던가."


    헉.


    "생각해봤는데."


    아니, 뭐, 그새 생각을 다.


    "길을 잘못들었어…."

    "어어, 아까 내가 한… 그러니까 형이 본 건. 그냥. 잊어버려."

    "내 말 끝까지 들어. 난 귀 막을 생각 없으니까."


    재빨리 귀를 막았다.


    "너가 귀를 막아도, 눈을 감아도."


    아차. 눈도 감아야지.


    "…뭔 말 할지도 모르면서."

    "………."

    "자냐?"

    "………."

    "벗는다?"

    "뭐?!"


    하하하. 그가, 형이, 김동완이, 소리내어 웃는다.


    "잘못 들었어 길을. 다른데 들어가 있었어, 다른 동화에."


    …그래, 토토. 널 처음만난 날, 나는 네가 토토인 줄 알았어.


    "………."


    그 날 아침엔 내가 도로신 줄로 착각했고.


    "야. 뭐라고 말 좀 해."


    그 날 헤어질 때는 일년은 족히 남은 네 생일 날, 너와 내가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고. 그리고,


    "김동완."


    처음 만날 날부터 네가 좋았어.


    "응?"

    "눈 감아."

    "아 또 왜."


    인어공주에게 왕자를 빼앗긴 모래사장, 그가 지금 토토의 눈으로, 자신이 다른 동화에 들어가 있었다고 말한다, 내게 말해온다.

    나는 소리없이 웃어- 내 심장을 되찾아오고, 발끝으로 지구를 톡톡톡, 세번 두드린다.

    나의 토토. 이상한 나라에 빠져있던 나의 인어공주.

    구두굽을 세번 두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다음 생일에도, 그 다음 생일에도, 그 다아아음 다음 생일에도 나의 곁에.




    "키스…할게."






    Mermaid In Wonderland

    working period : 060826-060908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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